[명화와 역사] 프란체스코 고야의 작품 세계: 청력 상실과 전쟁이 만들어낸 내면의 풍경

요즘 세상에서 인간의 마음과 생각만큼 복잡하고 미묘한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만약 우리가 인간의 마음을 온전히 들여다볼 수 있다면 과연 어떤 광경을 목격하게 될까요? 과학 기술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발전했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영역은 여전히 극히 제한적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이번 장에서는 누구보다 인간에 대해 깊이 탐구했던 스페인 화가, 프란체스코 고야의 작품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청력 상실 이후 변화한 고야의 초상화와 내면 

1795년에 그린 고야의 <초상화>를 보면 굳게 다문 입술과 굳은 표정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이 전해집니다. 특히 스케치하듯이 가볍게 선으로 그린 목과 어깨에 비해, 아주 완전하게 묘사한 얼굴과 머리카락이 강한 대비를 이룹니다. 고야의 내면과 정신을 더욱 강조하는 듯한 모습이죠. 그림 속 고야는 눈을 똑바로 뜨고 세상을 직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고야의 눈에 비친 19세기 유럽의 시대상과 당시 사람들의 내면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궁정 화가로서 왕가의 초상화를 그렸던 고야는 40대 중반 이후에 청력을 잃게 되었습니다. 하필 이 시기에 스페인은 전쟁과 사회적 갈등에 휩싸이면서 학살과 살생이 많이 벌어졌죠. 이처럼 뜻하지 않은 불행과 사회적 어려움을 겪었던 고야는 외적인 모습이 아닌 인간 내면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고야는 인간의 진실에 대해 심층적으로 탐구하였으며, 이를 죽기 전까지 30년 동안 판화로 남겼습니다. 




2. 고야의 <정신병동>에 투영된 악몽과 공포의 무의식 

고야가 1793년부터 1794년까지 그린 그림들은 이전 작품들과는 다릅니다. 마치 무의식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한데, 악몽의 한 장면을 표현한 것처럼 외로움이나 공포 같은 환각적인 이미지로 가득합니다. 고야가 1792년부터 청력을 잃기 시작했다고 하니, 점차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되면서 느꼈던 고립감과 공포를 표현한 듯합니다. 

그의 작품 <정신병동>의 등장인물들을 살펴보면, 먼저 왼쪽에 있는 인물은 뭉크의 <절규(비명)>에서 괴성을 지르는 사람처럼 입을 벌리고 있습니다. 마치 가면을 쓴 것 같은 검은 얼굴이 공포심을 불러일으키죠. 그의 뒤에는 날카로운 무언가를 들고 휘두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작품의 중앙에는 알몸의 남성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습니다. 이 장면 때문에 그림에서 강한 폭력성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른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은 인물은 관람자를 향해 기괴한 웃음을 짓고 있습니다. 치켜 올라간 눈꼬리와 입매가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그 뒤에는 어딘가를 향해 울부짖으며 기어가는 인물이 있고, 저 멀리에는 무언가 호소하는 얼굴로 두 손을 하늘을 향해 들고 있는 인물이 보입니다. 아마도 이 그림은 아래까지 미치지 않는 빛을 갈구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 위에 손만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밝은 빛이 있지만,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서로 싸우고 소리 지르며 홀로 앉아 있기만 합니다. 이 작품에서 빛은 등장인물을 비춘다기보다 인물에게서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조만간 고야가 청력을 완전히 잃고, 사람들이 전쟁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을 것이라는 비극적인 예감을 표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 판화 <공포>와 거인이 상징하는 전쟁의 참상 

고야의 작품 <공포>에서는 거인에 비하면 너무나 작은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속수무책으로 도망치고 있습니다. 인간의 무기력함을 확인하는 순간이죠. 일반적으로 이 거인은 스페인이 겪었던 전쟁을 의미한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작품의 제목이 말해주듯, 이 거인은 전쟁 그 자체보다 '공포'를 상징합니다. 

인간이 인간을 향해 총을 들이대는 그 순간, 국가나 전쟁의 이념보다 죽음의 공포가 더 무서운 법입니다. 공포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도망치는 것이고, 공포 때문에 다른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 작품을 보면 고야가 전쟁과 학살의 참상을 보면서 그 문제의 본질을 찾고자 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을 해하는 행동이 총칼이 아닌 분노, 공포, 잔인함 같은 인간 내면의 문제라는 것이지요. 

고야가 보여주는 전쟁의 참상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고야는 1810년대에 <그리고 그들은 야생동물이다(And They Are Wild Beasts)>라는 제목의 판화를 제작하였습니다. 이 작품에서 사람들은 서로에게 죽창과 칼, 총을 겨누고 있습니다. 아이를 둘러업고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창을 들고 가는 여인과 이미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 더미에 커다란 돌을 내리치려는 여인들이 보입니다. 

전쟁을 다룬 다른 작품들에서 여인과 아이들이 주로 전쟁의 피해자로 묘사되는 것과는 아주 다른 모습입니다. 이 작품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별하는 게 별로 의미 없어 보입니다. 어떤 연민이나 측은함도 없이 모두 죽이고 죽는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4. 고야의 작품 <같음>과 <여기도 아니다>  

또 다른 작품에서는 한 민중이 제복을 입고 칼을 들고 있는 군인에게 도끼를 내리치려고 합니다. 작품의 제목은 <같음>입니다. 민중을 대표하는 인물의 얼굴에서 정의감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저 두려움에 가득 찬, 초점 없는 눈빛으로 도끼를 휘두르고 있는 것입니다. 고야가 보여주는 전쟁과 폭력의 결과는 참담하기만 합니다. 

판화 <여기도 아니다>에서는 죽음과 잔인함을 무감각하게 관람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게 더 나쁘다>, <가장 나쁜 것은 구걸>은 제목에서 드러나듯이 점점 더 끔찍해지는 전쟁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5. 어두운 집안에서 탄생한 <자식을 삼키는 사투르누스> 

고야는 1820년 마드리드 근교에 집을 사서 벽화를 그렸습니다. 자신의 집안을 죽음, 타락, 공포, 추함 등 환각적인 이미지로 채운 것입니다. <자식을 삼키는 사투르누스>는 고야가 프랑스로 망명하기 직전에 그린 작품입니다. 


고야,-자식을-삼키는-사트르누스
고야, 자식을 삼키는 사트르누스


스페인의 어두운 시대를 살았던 그가 마지막으로 표현한 인간에 대한 공포라 할 수 있습니다. 어두운 집안에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공포와 마주한 채 그림을 그리고 있는 고야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삼키고 있으면서도 공포에 질린 듯한 눈과 그림에도 아이를 놓지 못하고 꽉 움켜진 주막은 마치 고야가 목격한 인간의 가장 어두운 내면을 그린 듯 사실적인 느낌마저 전달합니다. 

고야가 1799년에 제작한 판화 중에는 <이성의 잠은 괴물을 낳는다>가 있습니다. 한 남성이 책상 위에 엎드려 자고 있고 그 뒤로 부엉이와 박쥐가 합쳐진 것 같은 모습의 생명체들이 날아들고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잠들어 있는 남성은 고야 자신을, 날아드는 생명체는 무지를 상징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바닥에는 고양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운 채 경계 태세를 하고 앉아 있습니다. 마치 관람자가 작품의 주인공처럼 잠들지 않도록 경고하는 듯합니다. 

이 작품은 스페인 사회에 대한 고야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이성이 잠들어 있는 상황은 부패와 위선으로 가득한 당시 스페인 사회에 대한 비유입니다. 사회가 곧 혼란스러워질 것이라고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 작품의 제목에서 고야가 이야기하는 이성은 단지 지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생명, 행복, 정의와 같은 인간의 가치를 판단하고 존중할 수 있는 의식을 말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그의 작품은 시대를 넘어 인간 본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합니다. 오늘 당신의 이성은, 그리고 우리 사회의 이성은 깨어있는지 지금 고야가 묻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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